인간과 동물에게 다 같이 적용되며, 생각하는 것이나 만드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놀이이다. 놀이에는 뜻이 있다. 여기에서 호모 루덴스란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란 호모 사피엔스, 만드는 것은 호모 파베르를 염두에 둔 말이다. 놀이는 본능으로도, 의지나 정신으로도 설명할 것이 아니다. 물론 놀이를 인정함에 따라 우리는 정신을 인정한다. 놀이는 총체성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놀이는 어떤 것의 목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한다. 세계가 맹목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면 놀이는 말 그대로 하나의 과잉(過剩: superabundance)이 된다. abundance(과잉)란 단어의 마지막 부분 즉 dance에 눈이 간다. 다시 말해 superabundance냐 (놀이를 대표하는) dance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놀이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신화도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놀이이다. 온갖 분방한 상상 작용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정신은 진실과 농담의 경계선 위에서 놀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놀이가 문명의 주된 기초 중 하나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웃는 동물’이란 개념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개념보다 인간을 더 잘 묘사할 수 있다. 놀이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참과 거짓, 선과 악의 대립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놀이는 자발적인 것이다. 명령에 의한 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언제든 연기될 수 있고 중지될 수 있는 여분의 것이다. 놀이는 문화적 기능이 있기에 사회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놀이는 제한된 시간과 장소 속에서만 존재한다. 놀이는 질서를 창조하며 질서 그 자체이다. 놀이는 불완전한 세계 속으로, 혼돈된 삶 속으로 일시적이고 제한된 완벽성을 가져다준다. 놀이는 우리가 사물 속에서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두 가지 성질 즉 율동과 조화로 충만해 있다. 제의(祭儀)는 좀더 신성하고 좀더 성스러운 진지함이다. 그런데 이것이 놀이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 제의는 참여자들을 다른 세계로 옮겨놓는다는 점에서 놀이이다. 플라톤은 성스러움을 놀이라고 불렀다. 이는 물론 신성모독이 아니라 놀이의 개념을 정신의 최고 영역에까지 올린 것이다. 놀이가 제한된 공간에서 행해지듯 제의도 성스러운 영역에서 행해진다. 공동체의 종교의식이 고귀하고 진지하듯 무의식적이고 순수한 진짜 놀이도 매우 진지하다. 놀이는 자유분방함과 무아경의 두 극단 사이에서 움직인다. 음악은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한계 내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반복할 수 있고 그 본질은 질서, 율동, 변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중과 연주자를 동시에 일상적인 생활을 벗어난 기쁨과 평안의 세계로 데려다주기에 청중과 연주자를 매료하고 사로잡는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음악을 놀이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완전히 납득 가능한 이야기이다. 놀이의 반대어는 진지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반대어를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가령 놀이 – 진지함(Spiel – Ernst)이란 말이 그것이다. 놀이는 문화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문화의 초기 단계에 놀이적 성격을 갖는다. 하나의 문화가 진행됨에 따라 놀이와 놀이 아닌 것 사이의 본래적 관계는 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놀이 요소는 대개의 경우 종교 의식 영역으로 흡수되어 버리면서 점차 그 세력을 잃는다. 물론 어느 시대에든,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서까지도 놀이의 본능은 매우 강력한 힘으로 되살아나서 개인이나 대중을 거대한 놀이의 황홀경 속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저자는 포틀래치를 단순한 투기(鬪技) 본능으로 보며 그것에 엄격한 놀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문화는 놀이로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놀이로부터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놀이 속에서 시작된다. 놀이는 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원초적인 것이다. 라틴어에서 성스러운 경기가 놀이라는 단순한 말로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든 문화에서 투기적 관습으로 특징지어지는 놀라운 유사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인간 정신의 영역 즉 지식과 지혜의 분야이다. 시를 짓는 것도 놀이 기능이다. 그것은 정신의 놀이터 즉 정신이 그것을 위해 창조해주는 그 독자의 세계 속에서 진행된다. 이 속에서 사물은 일상생활에서 갖는 외관과는 매우 다른 외관을 갖는다. 시는 진지함 너머에 즉 어린이, 동물, 미개인, 예언자가 속하는 보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수준, 꿈, 매혹, 엑스터시, 웃음의 영역에 속한다. 고대 시인의 진정한 명칭은 라틴어로 바테스(Vates) 즉 악마에 홀린 사람, 신들린 사람, 헛소리 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격은 동시에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 원초적 문화 창조 능력에서 볼 때 시는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탄생한다. 그러나 항상 그 신성함에도 불구하고 쾌활한 탐닉, 환락, 흥겨움과 접해 있다. 시적 능력은 사교적 모임, 씨족과 부족, 종족 사이의 격렬한 논쟁 속에서도 개화한다. 순수한 미적 욕구의 ‘만족과는 멀리 떨어진 시’라는 형식이 공동 사회의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상태는 오늘날의 진보된 문화 속에서도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세계 어디서나 시가 산문에 선행한다. 진지한 것, 성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은 시 뿐이다. 신화는 어떤 형식을 취하든 항상 시이다. 시와 놀이의 유사성은 외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조적 상상력의 구조에서도 그 유사성은 나타난다. 시구의 전환, 주제의 전개, 분위기의 표현 등에는 항상 놀이 요소가 작용한다. 그 자체가 경쟁의 한 형식인 시는 고대의 수수께끼 기합과 거의 구별할 수 없다. 후자는 지혜를 만들고 전자는 아름다운 언어를 만든다. 시적 언어가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은 이미지를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어떤 은유의 효과가 사물과 사건을 살아 있는 것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것에 있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의인화의 과정에 접어들게 된다. 형체도 생명도 없는 어떤 것을 한 인격체로서 묘사한다는 것은 모든 신화 형식의, 그리고 대부분 모든 시 짓기의 정수(精髓)이다. 기술적으로 하나의 표현 형식으로 간주되는 궤변법은 원시적 놀이와 많은 연관성을 갖는데 그런 연관성을 우리는 이미 소피스트의 전신인 바테스에게서 발견한 바 있다. 놀이와 음악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제의(祭儀), 춤, 음악, 놀이의 관계는 플라톤의 ‘법’에 쉽게 잘 서술되어 있다. 플라톤은 신들이 슬픔을 안고 살아 가도록 태어난 인간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그들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쉴 수 있도록 추수 감사 축제를 제정하고 그들에게 뮤즈들의 우두머리인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보내 그들의 친구가 되게 했다고 썼다. 음악에 관련된 모든 것이 놀이 영역에 머무는 것이라면 음악의 쌍둥이 자매라 할 무용은 더욱 그렇다. 놀이와 춤의 관계는 너무 밀접해서 거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춤이 그 자체 안에 어떤 놀이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놀이를 이루는 데에 절대 필요한 하나의 구성 요소가 춤이라는 말이다
인류의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에 두고 예술사와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관한 다양한 학문을 도입하여 인류의 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와 행위 양식의 본질을 파헤치면서 놀이가 오늘날의 문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하위징아는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발견되고 인간의 공동셍활 그 자체가 놀이형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철학, 시, 예술 등에도 놀이의 성격이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가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키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저자는 현대에 이르러서 일과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며 고대의 신성하고 삶이 충만한 ‘놀이 정신’의 회복을 바란다. 그는 놀이에 따르고, 놀이에 승복하며,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문명을 빛나게 한다고 말한다.
옮긴이의 말
들어가는 말
제1장 놀이는 문화적 현상이다: 그 본질과 의미
놀이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
문화의 기능을 담당하는 놀이
놀이와 진지함
놀이의 일반적 특징
모든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놀이의 예외적이고 특별한 지위
놀이는 경쟁 혹은 재현이다
놀이와 의례의 관계
놀이의 진지한 측면
놀이와 축제의 관계
놀이와 종교의 관계
제2장 언어에서 발견되는 놀이 개념
그리스 어 아곤(agon)
산스크리트 어, 중국어, 알공킨 어
일본어, 셈 어, 라틴 어
게르만 어와 영어
놀이와 경기(아곤)의 관계
음악과 에로스
놀이와 진지함의 상보적 관계
제3장 놀이와 경기는 어떻게 문화의 기능을 발휘하나
놀이의 대립적 성격
경기를 놀이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승리와 부상(副賞)
놀이와 원시 사회
아메리카 북서해안의 콰키우틀 관습
포틀래치는 사회적 현상이다
멜라네시아의 쿨라 제도
칭찬과 명예
문화 속의 과시적 요소
무파카라와 무나파라
그리스, 게르만, 프랑스의 전통
경기(아곤)는 문화의 보편적 요소
문화를 추진하는 아곤의 요소
제4장 놀이와 법률
소송은 놀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행성 게임, 경기, 말싸움
신부를 얻기 위한 경기
법적 절차에서 발견되는 내기의 두 가지 요소
그린란드 에스키모의 분쟁 해결 방식
제5장 놀이와 전쟁
문화적 기능을 담당하는 싸움
단 한 판의 싸움
사법적 결투
일반적 결투
전쟁의 아곤적 요소
적에 대한 예의
중세의 군사적 관습
국제법은 아곤에서 유래
중세의 기사도 정신
러스킨의 전쟁 예찬
제6장 인식(지식)의 수단이 되는 놀이
베다의 수수께끼 게임
철학의 탄생
수수께끼의 본질
수수께끼의 사교적 역할
철학적 질문과 답변
수수께끼와 철학의 관계
제7장 놀이와 시
신들린 시인 바테스
시는 놀이에서 생겨났다
사랑의 법정
교훈시
신화, 시가, 놀이
신화의 본질
시는 말로 하는 놀이
시는 존재와 생각을 이어 준다
시는 놀이 정신의 최후 보루
제8장 신화 창조의 요소들
의인화는 놀이의 한 요소
의인화는 마음의 습관
서정시, 서사시, 드라마
제9장 철학에서 발견되는 놀이 형태
소피스트의 기술
소피스트리와 프로블레마
플라톤과 미모스
철학이 발전해 단계
로마 시대와 중세의 철학
12세기의 학교와 학파
학문의 아곤적 성격
제10장 예술에서 발견되는 놀이 형태
음악과 놀이
그리스의 음악 사상
디아고게
미메시스
음악의 기능
무용은 순수 놀이
조형 예술의 비 놀이적 특징
예술 작품의 의례적 성질
실러의 놀이 본능
조형 예술의 아곤적 요소
제11장 놀이의 관점으로 살펴본 서양 문명
로마 제국 시대
중세 시대
바로크 시대
로코코 시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
놀이를 배척한 19세기
제12장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 요소
현대 스포츠
놀이와 분리된 스포츠
카드 놀이의 폐해
현대의 상거래
현대 예술
현대 과학
유치하고 그릇된 놀이
정치의 놀이 요소
국제 정치와 현대의 전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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